백일독학 [1294507] · MS 2024 (수정됨) · 쪽지

2024-02-04 09:10:1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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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독학 반수) 나는 어쩌다 100일의 전사가 되었는가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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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방구석에서

독학 반수에 성공한 100일의 전사이다.


정확히 딱 100일을 공부했다.


현역 때는 경기권 D대학교에 입학했는데,

(현역 때 가나다 군을 모두 다 떨어지고 추가합격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학교 중 그나마 가장 이름 있는 학교로 간 것이었다.)


결과에 대한 아쉬운 감정이 떠나질 않아

부모님께 반수를 선언했다.


부끄럽게도 굳은 ‘반수’의 다짐은 얼마 가지 않아

핑계거리로 전락 했다.


반수생이니 1학기는 놀아도 된다는 생각으로

책은 한 자도 보지 않았고,

매일같이 친구들 만나서 술을 마시고

소개팅도 나가보고

친목 동아리에도 들어가서 신나게 놀았다.

갓 사회에 풀어진 20살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.


그러다 보니 1학기는 금방 지나가 버렸고

여름 방학이 찾아왔다.

여름방학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나는, 마지막 휴식이라는 핑계로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술 먹으러 다니기 바빴다(단 1시간도 공부하지 않았다).


그렇게 청춘, 낭만의 방학을 보내다 보니

어느덧 수능 D-102였다.


이미 수능 대박, 전세역전은 내심 포기하고 있었다.

부모님께서도 그쯤부터는 굉장히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시며 그런 식으로 해서 무슨 수능을 보겠다는 것이냐며 실망스러움이 담긴 덕담(?)을 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.


아무튼 수능 D-102이 되던 날에도,

나는 S 형과의 술 약속이 있었다.

(S 형은 친목 동아리에서 만나게 된 형인데,

그 형은 중앙대에서 반수를 해서 서울대에 합격한 반수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었다.)


그날 우리는 맛있는 낙성대역에서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소주를 마셨다. 대화를 하다가, 문득 형이 물었다.


“너 요즘 공부는 하루에 몇시간 씩 해?”


당시의 나는 하루에 1시간씩도 안하고 있었다.

하지만 1시간씩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

형이 나를 너무 한심하게 바라볼 것 같아서

자존심은 지켜보겠다는 생각에 거짓을 말해버렸다.


“한 6시간씩 하는 거 같은데?”


말하자 마자 후회감이 들었다.


‘6시간은 심했나…4시간이라고 할 걸 그랬나?’


그때는 하루에 6시간 씩이면

굉장한 공부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.


그래서 나는 형이 ‘그래? 잘하고 있네.’라고 답할 줄 알았다. 하지만, 형의 대답은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.


“야 재수한다는 놈이

6시간 밖에 안 하면 어떡해.

나 재수학원에 있었을 때는 수업시간 빼고도 하루 10시간 씩은 매일 했어.”


엄청난 충격이었다. 

넉넉잡아 수업시간이 4~6시간이라 치면

하루에 14~16시간씩 했다고? 


그것도 중앙대 반수생이?

나는 D대 반수생인데?


애초에 나보다 더 똑똑하고

대학도 이미 나보다 잘 간 사람이

나의 4배 5배를 공부를 한다고?


'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겠네?

내가 술 먹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연세대 한양대 반수생들은 12시간이 넘게 공부하고 있겠구나. 그렇겠구나. 그렇구나…'

(형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러한 현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게 되었다는 걸 보면 당시의 내가 얼마나 ‘생각’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. 오로지 내 생각, 내 감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주위를 둘러보고 생각해보는 여유 한번 가질 줄 모르는 애송이었던 것이다.)


어이가 없었다. 그냥 머리가 공허해졌다. 그렇게 멘탈이 나가버렸다.

 

멘탈이 나가버린 나는,

입을 ‘아…’ 벌린 채 아무 말 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. 


정확히 그 순간

갑자기 옆 테이블에서 두명의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.


“무슨 과예요?”

(낙성대역은 서울대생의 영역이라 술집에 있는 대부분이 서울대생이다. 그래서 일단 서울대생 인건 당연하다 치고, 우리에게 무슨 과인지 물어본 것이다.)


“저는 농경제에요”

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S 형이 많이, 많이 부러웠다.

대답을 기다리는 시선은 나에게 돌아왔다. 나는 내심 의기소침해졌지만,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.


“저는 서울대가 아니에요.”


“아 그러시구나.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한잔 할래요?”

취기가 올라온 듯 보이는 그들은 둘이서만 놀기에는 심심했는지 우리에게 합석을 요구했다.


S 형은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고, 나는 수락했다.

서울대생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노는지 궁금하기도 하고,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.


“너 수능 몇개 틀렸어?”

“나 4개.”

“(하이파이브를 치며)오! 나도 4개 틀렸는데.”

“그 수능 쉬운 거 사람들은 왜 틀리는지 몰라.”

“그러니까. 하하하”


아직까지도 잊히지가 않는 그들의 대화 내용이었다.

그리고 그 중 한명은 연세대학교에서 반수를 성공하여 

서울대에 들어간 사람이었는데,

다른 두 명이 그를 놀리는 농담으로 한다는 말이.


“연세대는 반수학원 아닌가. 하하하. 이걸(서울대를) 한 번만에 못오네.”


서울대생 3명에게 둘러 쌓여 이런 대화를 듣고 있자니,

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.

그들은 수능이라는 시험을 정말 쉽게 보는 듯이 이야기했다.

아니, 실제로 그들에게는 쉽게 느껴졌을 것이다.


그 현장에서 내 머릿속에는 의문이 맴돌기 시작했다.


‘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애들도 다 맞추는 수능 문제를 왜 나는 못 맞추는 걸까? 왜 나는 어렵게 느끼는 걸까?’, ‘나는 뭐가 부족해서?’, ‘내가 쟤들이랑 뭐가 달라서?’


질투도 아니었고 공허함도 아니었다.

정말 순수한 의문이었다.


이런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,

결정타가 날아들어왔다.


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는

내 눈치가 보였는지,

한 명이 나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.


“너는 무슨 대학교 다녀?”


나는 대답했다.


“아 나는 D대학교 다녀.”


1.5초정도의 정적 이후에

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내 인생을 바꿨다.

 

“에이 야 공부 못해도 괜찮아. 얼굴 반반하면 됐지.”

 

이 말을 듣고 술이 확 깼다.

너무 강렬한 한 마디였다.


절망과 분노 사이의 어떤 감정이 북받치게 올라왔다.

절망은 나의 미래에 대한 절망이었고,

분노는 스스로의 하찮음에 대한 분노였다.


‘아.

나는 이제 평생 공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구나.

내가 공부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

아무리 증명해 보겠다고 발버둥쳐도

대학 이름 하나면 평가가 끝나 버리는 것이구나.


남은 내 80년의 인생은 수많은 무시를 감내하고,

차오르는 열등감에 대하여 자기합리화 하며

정신승리, 자기위로 해야 하는 인생이겠구나.’

(당시에 들었던 이러한 생각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지금은 잘 알지만,

20살 시절 어린 나의 마음 속은 위의 생각들로 가득 찼다.)

 

사실 그 전에도 대학 이름 가지고

무시를 당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,

끝내 쌓여오던 열등감/분노의 감정이 폭발해버렸다.


‘아… 내가 보여줄게. 내가 끝장 보여줄게. 너희들이 할 수 있는거 나도 다 할 수 있어. 내가 보여준다. 딱 기다려. 1년 뒤에 보자고. 어떻게 되나 한번 보자.’


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.

집에 가서 얼른 공부 계획을 짜고  공부하고 싶었다.

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무리 생각해봐도

술 취한 상태에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그날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.

 

[ 수능 D-101 ]

잠에서 깨어나니 벌써 오후 1시였다.

거실에 나가니 엄마가 점심을 차려 주셨다.

한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밥을 먹었다.


그리고는 방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

저녁 먹을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.


방에 들어 간 나는, 뭐부터 공부해야 할지 생각했다. 일단 인강 사이트에 들어가서 커리큘럼들을 쭉 살펴보았다.

이미 수능은 101일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에

과목마다 커리큘럼이 2개 이상 씩은 끝난 상태였다.


두렵고 막막했지만, 마음 속 불은 타오르고 있었기에

‘하루에 3일치 씩 들어버리지 뭐.’라는 생각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.


그러다 돌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.

‘나는 지금 무조건 스카이(서울대 연세대 고려대)에 가야만 해. 스카이에 가고 말거야. 그런데 이 커리큘럼을 다 듣는다고 해서 스카이를 갈 수 있는 것이 맞을까?

작년(현역)에도 해봤잖아.

강의를 다 들어도 성적 안올랐잖아.


이게 맞나?

강의를 전부 듣고 말고가 중요한 것이 아닌거 같은데 지금...


현역 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. 커리큘럼을 다 듣는다고 해서, 문제집을 다 풀었다고 해서 성적이 상승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.


그 사실을 여러분도 꼭 알아야 한다.

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꿔 보기로 했다.

접근법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.


그 자세한 방법과 내용에 대해서는 차차 다루도록 하겠다.

나는 그렇게 새로운 접근법을 토대로 남은 100일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12~14시간 씩 공부했다.


악으로 깡으로 버텼다.

(매일 평균 13시간 공부했다는 점에 주목해 주길 바란다. 하루 10시간 이상의 공부량은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데 있어 필요조건이다. 다만, 충분 조건은 아니라는 점도 유념하길.)


위의 분량을 단 100일만에 다 풀어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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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 *정리* ]


-       당신이 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양대 서강대 반수생들은 하루에 10시간 이상 공부하며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. 나는 이 사실을 매일 상기하며 하루하루 뒤처지면 안된다는 다짐으로 이 악물고 공부했다. 여러분도 이 사실을 잊지 말자.

 

-      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공부법대로, 커리큘럼대로 1년을 완주한다고 점수가 오른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. 공부에 대한 접근법, 공부법에 대하여 더 고민해봐야 한다.

 

-       하루 10시간 이상의 공부량은 기본이다. 필요조건이라고 말했다. 즉, 아무리 좋은 방법으로 공부해도 공부량이 뒷받침 해주지 않으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없다.

(일부 천재들을 제외하고)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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